[천안다문화] 주한 벨기에의 자선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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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후, 벨기에인들이 한국에서 펼친 자선 활동의 범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가 가장 경제적, 사회적 필요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가장 모범적인 것이었다.

이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나병 환자는 전적으로 무력했다.

벨기에는 열대의학에 대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와이의 나병 환자들 사이에서 '데미안' 신부의 서사시는 벨기에 의료계에서 벨기에 콩고에 널리 퍼진 나병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소록도는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을 품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한센병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이주당한 6000여명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53년 벨기에 대대의 간호사 테레즈 캄비에(Th?r?se Cambier)는 머물다가 국가의 큰 불행에 충격으로 1979년까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녀는 당대 사회에서 배척당한 환자들을 만나러 순회 의무대를 운영했고 그 후 캐나다의 '나병 구호'로부터 예산을 받고 병원을 세웠다.

우리는 얼굴과 팔다리를 다시 그리고 재구성한 Van Droogenbroeck의사의 친절함과 손재주, 그리고 Raymond Spies신부의 사회적 활동을 여전히 소록도에서 기억한다.

그들의 기억은 소록도에 기념비로 구체화 됐다.

벨기에 뢰번 카톨릭대 의대를 졸업한 나베씨 1966년 벨기에 한센병 퇴치 인권단체 '다미안 재단'과 한국 보건복지부 업무협약에 따라 한국행을 결정했다.

53년 전 소록도에서 쌀가마니 안에서 죽어가던 생후 3개월 된 아이 '김치'를 살린 기억 자전적 소설 '김치' 출간 수익금 기부 아직도 기억한다.

벨기에 소록도 박사 샤를 나베(Charles Navez)는 지난해 브뤼셀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모란훈장을 받으며 "한국 정부가 나를 인정해 준 것은 큰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베이죠소랑쥬 명예기자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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