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작가(추억의 뜰 대표) |
크리스티나가 받은 선물은 바로 시어머니 자서전이었다. 시누이가 작가에게 부탁해서 어머니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만들었다. 어버이날 하나밖에 없는 선물이 탄생했다. 결혼한 지 8년이 지났지만, 한국 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크리스티나는 시어머니의 자서전을 읽고 또 읽으면서 새로운 문화에 빠져들었다.
자서전 속 42페이지 글을 잠시 빌려오면, (책 속 문장 인용)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아버지 고등학교까지만 보내주세요"라고 애원했더니 "여자가 배워서 어디 쓸데가 있어? 안 돼"라고 호통 치시는 바람에 더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도 한 때는 꿈이 있었고 고등학교에 가고 싶던 분이다. 크리스티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던 어머니의 심정을 그제서야 알게 됐다.
크리스티나의 어머님은 시골 할머니지만 매일 책 한 장 이라도 꼭 읽는 분이다. 시집와서 8년간 대화 나누고 알고 지낸 어머니는 60대의 어머니였는데 책 속에서 여섯 살의 어머니, 스무 살의 어머니도 만날 수 있
었다. 책에서 만난 시어머니는 안쓰럽고 소중한 분이었다.
시어머니도 누군가의 딸이었고 스무 살 꽃다운 신부였다. 시아버님이 작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남아 쓸쓸하신 틈에 시누이가 책을 만들어드렸다. 어머님이 처음에는 시골 할머니가 무슨 책이냐며 손사레를 쳤는데 막상 책을 받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
책 속에 담긴 가족의 사진, 그들의 이야기가 어머니의 그리움을 불러왔다. 인생에 상 받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피력하신 시어머니. 유치원 다니는 큰아이가 할머니 이야기를 읽어드렸더니 감격하셔서 눈물을 흘리셨다. 고생했던 기억이 차올라 감정을 추스르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친구 집에 가시는 어머니 손에 책 두 권이 들려있었다. "가난하게 살던 이야기 창피해서 안 보여줄거야." 하시더니 어느새 마음이 변하셨나 몰래 갖고 나가시는 뒷모습에 콧등이 시큰했다. 아이들의 일기 속에도 삶의 흔적이 묻어 있듯이 어른들의 삶 속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성까지 담겨있다. 우리가 평범한 개인의 삶에 관심가져야 할 이유다. 시어머니 책은 자녀들에게 귀한 유산이 되고 가족을 이해하는데 더 깊은 통로가 된다. 삶을 기록하고 나누는 과정은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크리스티나는 틈틈이 책 속에서 시어머니를 만나면서 더 친밀해지고 존경하는 마음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삶을 기록한다는 건 서로에게 책임감이 부여되는 아름다운 유산이다.
-추억의 뜰 대표 김경희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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