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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주변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이렇게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낯선 한국에 오셨나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실 한국은 내게 완전히 낯선 이국땅이 아니다.
아버지는 1945년, 다섯 살 무렵 부모님의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너 중국 선양(심양)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가족의 삶은 중국에서 이어졌다. 아버지는 동포 1세대였고, 나는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동포 2세대다. 그리고 내 아들은 동포 3세대로, 할아버지의 조국인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중국 선양에서 한족학교를 다녔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한국에 와서 산업 현장과 식당에서 일하며 조금씩 한국어를 익혔고, 아들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뒤에는 다시 처음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아들은 유치원에서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가족센터에서는 중국어도 배우며 영어도 접하고 있다. 여러 언어와 문화를 경험하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만약 중국에서 아이를 키웠다면, 한국어를 모르는 평범한 중국인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라면서 우리 민족의 언어인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더 넓은 교육 환경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키워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것이 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오다 보니, 예산은 어느새 우리 가족의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그리고 내 아들에게는 이곳이 첫 번째이자 평생의 고향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들은 아직 외국인등록증을 가진 외국인이다. 하지만 얼마 전 집에서 태극기를 정성껏 그리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이끌어 주신 길이었구나.'
앞으로도 나는 이 땅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아들이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한국과 중국, 두 문화를 모두 이해하며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현나 명예기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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