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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바다에 떠있는 많은 배들과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오천면에는 16개의 유인도와 67개의 무인도가 있는데 충청수영성은 해안가를 방어하는 사령부 역할과 조운선의 안내와 보호를 해왔다. 충청수영성은 1510년 수사 이장생(李長生)이 돌로 쌓은 성이다. 영보정 건축물은 들어가서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기도 하고 바람을 세며 잠시 머물 수 있다.
충청수영성은 현재는 서문을 비롯하여 1,650m가 남아 있으며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복벽과 남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쌓았으며 서벽은 바다와 면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조선 시대 수군진(水軍鎭)의 모습을 하고 있다. 충청수영성 방문객들은 건축물과 바다를 봐라보며 그 지형과 바다 경지에 놀라워한다. 당시 수영성의 규모는 군선 140여척과 병력 8,4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1896년 폐영(廢營)한 후 지금은 오천항에서 200여 척의 유어선이 연중 낚시객을 맞고 있으며, 바다에는 배들이 오간다. 영보정 건축물에서 바라보면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은 작게 보이는데, 옛 건축물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은 방대한 역사와 민족의 소망을 품고 있다.
충청수영성은 대한민국의 다른 수영성에 비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주변 지형과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이케다마찌코 명예기자(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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