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다문화] 내 나라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국 : 말 너머에 담긴 ‘정’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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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 사람에게 소개 하고 싶은 한국'이라는 주제를 고르고, 처음에는 무엇을 소개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일본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한국 음식, 서울의 활기찬 거리,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 편리한 교통….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나에게는 소개하고 싶은 것이 참 많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관광지나 음식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한국을 소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살아가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가운데 조금씩 접하고 느끼게 된 '정(情)'과 '한(恨)'이다.

일본어에도 '情'이라는 말은 있다. 일본어에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거나 돌보는 사이 어느새 애착이 생겼다는 의미의 표현이 있고,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접하면서 애정이나 연민 같은 마음이 새롭게 생겨났음을 나타내는 표현도 있다. 특히 전자의 의미는 한국어의 '정이 들다'와 상당히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정이 들다', '정이 많다', '정이 없다', '미운 정 고운 정'처럼 일본에서보다 훨씬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정'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밥을 같이 먹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어느새 쉽게 떠나거나 잊을 수 없는 마음이 생긴다. 사람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나 장소에도 '정이 들었다'고 말한다. 나 역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아, 이런 것이 한국에서 말하는 정이라는 것일까" 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내가 느낀 한국의 '정'은 단순히 상대를 좋아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마음만은 아닌 것 같다. 한번 맺은 인연을 쉽게 놓지 않고, 가까운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마음을 쓰며,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서로의 일에 관여하고 챙기는 모습에서도 나는 '정'을 느껴 왔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연결을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본과 한국이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일본 사람은 이렇고 한국 사람은 저렇다고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가 "아이고, 아이고" 하며 소리 내어 울고, 주저앉다시피 오열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에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깊은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고 함께 나누는 방식에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아 온 일본 사람들은 깊은 슬픔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을 억누르려 하거나, 어떻게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써 마음을 추스르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사람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때로는 담백하다 못해 다소 냉정하거나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슬픔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아주 기쁜 일이 있을 때조차 감정을 크게 드러내기보다는 차분하게 있으려 하고, 때로는 일부러 냉정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 면도 일본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사람들의 '정'이 얕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의 깊이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법일 수도 있고, 힘든 감정을 스스로 감당하고 정리하려는 것이 그 사람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일 수도 있다. 반면 한국에서 살다 보면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누군가 걱정되면 적극적으로 챙겨 주는 모습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나는 그런 모습 속에서도 한국의 '정'이 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차이를 경험한 것 역시 내가 한국의 '정'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감정을 비교적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 온 것과는 달리 마음속 깊이 쌓인 '한'까지 쉽게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닌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겉으로 표현되는 기쁨이나 슬픔과는 또 다른,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감정이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나에게 '한(恨)'은 '정'보다도 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말이다.

'한'이라는 글자는 일본에서도 사용하지만, 일본 사람이 이 글자에서 떠올리는 감정은 대체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 한국어의 '한'을 접했을 때 나 역시 그런 의미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한이 되다', '한이 맺히다', '한을 풀다'라는 표현을 들을수록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 되었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일본 사람의 감각으로 '한'이라는 글자만을 받아들이면 "학교에 가지 못한 일로 도대체 누구를 그렇게 원망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의 '한'에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소망, 오래도록 남아 있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마음속 깊이 품어 온 바람까지 함께 담겨 있다고 나는 느낀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라도 그토록 바라던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면 "평생의 한을 풀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표현 역시 일본 사람이 '한'이라는 글자가 주는 느낌만으로 받아들이면, 마치 오랫동안 자신을 힘들게 한 상대에게 되갚아 주거나 복수라도 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실제로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던 소원을 마침내 이루었다"거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응어리를 풀어냈다"고 설명해야 비로소 그 느낌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일본 사람에게 "한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직도 한마디로 자신 있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이 말이 외국인인 나에게는 그만큼 깊고 어려운 말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국에서 오래 산다고 해서 그 나라를 모두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살수록 "아직도 모르는 것이 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 늘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조금씩 이해해 가는 과정 역시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재미이자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일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국은 '정'과 '한'처럼 번역만으로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말, 그리고 그 말 너머에 있는 한국이다. 그곳까지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면 여행으로 보았던 한국과는 또 다른 한국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지와라나나꼬 명예기자(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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