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운남성 누강(강 이름)을 밧줄로 건넌 어린 아이들이 방송을 통해 보도되면서 관심을 끌었다.
이후 20여개 방송국 연합해서 '사랑으로 희망의 교량을 가설하자'는 공익 캠페인을 전개했다.
시작은 15년 전 운남 뿌라촌으로 며칠 간 일정으로 여행을 간 기자들의 보도에서 비롯됐다.
촌민들이 물살이 센 누강을 밧줄 하나에 의지해 활차로 급속히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았는데 당시 그 중 어린 위얀챠가 강을 건너는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활강 장면은 현지인에게는 생활이다.
집집마다 5~6개 활차를 가지고 있고 일상생활과 관계 있는 것들을 모두다 활차로 운송했다.
3~5살의 아이들은 부모의 몸에 묶여서 누강을 건너다가 5~6살이 되면 혼자서 건너는 것을 배운다.
가마솥, 소파, 텔레비전을 업고 건너는 모습 볼 수 있고 심지어 돼지가 허공에서 떨어지는 상황도 볼 수 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위얀챠와 친구들은 매일 최소 2번을 건너야 하는 상황이다.
어린아이의 몸무게는 가벼워서 활차는 강의 건너편 도착하기 전에 멈추고 나머지 거리는 손으로 밧줄을 잡고 활차를 당기며 조금씩 가야 한다.
이를 목격한 기자들이 전국에 공개한 뒤 누강 아이들의 힘겨운 등굣길은 전국의 시청자과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쨩수 방송국의 '사랑으로 희망의 교량을 가설하자'는 운동을 시작으로 20여개 매체가 연합해 기금을 모으는 캠페인을 펼쳤다.
이런 후원으로 몇 개월 후 교량이 가설됐다.
이후에 2번째 3번째 애심교량이 잇따라 건설됐다.
강물 건너는 방식이 변하며 위얀챠의 생활도 변했다.
위얀챠도 처음으로 살던 곳에서 벗어나 쿤명과 베이징도 가게 되었고 대학까지 진학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위얀챠는 고향에서만 취업하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위얀챠는 "지금까지 나의 앞길을 비춰주는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도 타인을 위해 길을 비춰주겠다"고 했다.
이런 소망을 전해들은 학교는 구직을 추천해 현재 위얀챠는 누강 인민의원에 취직했다.손효설 명예기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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