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다문화] 양귀비꽃은 왜 ‘양귀비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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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과 처음 만날 때,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어디서 왔어요?”이다. “중국 시안이요.”라고 대답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곳이게 어디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진시황, 병마용, 당나라, 이백”과 같은 키워드를 덧붙여 설명하곤 한다.

내가 시도해 본 많은 키워드 중, 들은 사람 중 백이면 백 모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단 하나의 키워드가 있는데 바로 ‘양귀비’다. 그제야 이 당나라 미인이 한국에서 이렇게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유명하냐고? 아주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그 한국어 이름이 바로 ‘양귀비꽃’이다! 사전을 찾아봤을 때 ‘양귀비’는 ‘아편꽃’이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어? ‘아편꽃’의 씨앗을 다이소에서 팔아도 되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든다. 찾아보니 사실 유독 성분이 있는 건 ‘Papaver somniferum’이고, 유독 성분이 없는 건 ‘Papaver rhoea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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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길가나 공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붉은 꽃이 바로 ‘Papaver rhoeas’인데, 중국에서는 ‘우미인(虞美人)’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우미인’은 누구일까? '우미인' 역시 역사적으로 매우 유명한 여성이다.

진나라 말기, 서초 패왕(西楚霸王) 항우(项羽)가 유방(刘邦)에게 해하에서 포위당했을 때, 이미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항우가 사랑하는 우미인은 더 이상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의 허리에 찬 칼을 뽑아 자결했다. 훗날 그녀의 무덤 위에 피어난 붉은 꽃은, 바람 속에서 춤추듯 흔들렸다. 우미인이 춤을 잘 추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이 꽃은 ‘우미인’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이 꽃을 ‘양귀비꽃’이라고 부를까?  양귀비 역시 '우미인'처럼 역사 속의 유명한 미인이지만 문학작품 속 '우미인'은 대체로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양귀비는 훨씬 더 복잡한 인물이다. 남편도 아이도, 한국 친구들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교수님이 말하길, “양귀비는 역사 속에서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험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꽃을 그렇게 부른다.”라고 했다.

나는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양귀비꽃 영상을 시안에 있는 중국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는 나에게 또 다른 영상을 보내주었다. 그 영상에는 당나라 미인으로 분장한 무용수들이 춤추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친구가 말하길, “봐봐, 꽃이 흔들리는 모습과 무용수의 춤사위, 정말 닮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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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 꽃을 볼 때마다, 바람 속에서 춤추는 당나라의 미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꽃이 양귀비든, 우미인이든, 이름을 넘어선 그 아름다움과 이야기는, 지금 이곳 한국에서도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한 송이 꽃에 담긴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 그 속에서 중국과 한국은 서로 닮은 기억을 나누고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그 아름다움은 같은 것이 아닐까.
당리 명예기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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