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다문화] 죽순, 비 온 뒤 성장한 생명의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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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뻗어가는 K-문화의 현주소를 살피니, K-나물에 관심 두는 외국인이 많아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서양의 경우 조금의 독성이라도 있으면 아예 건들지조차 않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산야초를 일상적으로 섭취해 왔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원추리, 토란 줄기, 옻 순, 두릅, 아주까리잎 등은 독성이 있는 식물이다. 잘못 먹으면 두통, 설사, 근육 경련, 피부 발진 등을 동반한다. 아주까리의 종자에는 청산가리의 1,000배, 코브라 독의 2배가 넘는 라이신(Lysine)이라는 독성 알부민 성분이 존재한다. 한국인은 세상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식물로 기네스북에 올라와 있는 아주까리씨를 기름을 짜서 사용했다. 심지어 해로운 것을 먹은 이에게 아주까리 종자유를 먹여 설사를 유도하여 독성을 배출하는 데 이용하기까지 했다. 이런 한국인들의 밥상에서 예상외로 흔히 볼 수 없는 식물도 있다. 죽순은 그중 하나이다. 800년 전부터 확실히 검증된 식재료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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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竹筍)은 대나무의 뿌리가 구근화하여 지상으로 돋아난 어리고 연한 싹을 말한다. 죽태(竹胎)라고도 한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은 비 온 뒤에 여기저기 솟는 죽순을 뜻하는데, 어떤 일이 한때에 많이 생겨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볏과 식물인 죽순에 함유된 단백질의 약 70%는 아미노산과 베타인, 콜린 등이어서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죽순의 아린 맛은 아미노산인 타이로신(Tyrosine)이 산화한 옥살산(蓚酸)과 청산배당체 때문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성분은 열에 약해서 익히면 사라진다.

죽순은 아삭한 식감과 양념을 잘 받는 성질 때문에 중화요리인 팔보채나 짬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찌고, 조리고, 볶은 일본 가정식 요리나 일본식 라면에도 빈번히 사용된다. 그에 비해 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죽순의 소비량이 가장 적다. 아삭한 식감 외에는 무미(無味)에 가까운 죽순의 미각적인 면에서 꺼려지는지 모른다. 그보다는 한반도의 지형과 기후에서 더욱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대나무 재배 가능 지역이 북상 중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의 경우 대나무가 나는 지역이 주로 남도에 한정돼 있어서 채취와 유통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죽순은 생장 중인 어린 식물이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아미노산과 당류의 소비가 진행돼 맛이 떨어진다. 저장이 어려워 보통은 통조림 형태로 소비될 수밖에 없다. 가끔 통조림에 보이는 흰 앙금은 부패한 것이 아니다. 죽순에 들어있는 수산염, 키시란, 전분, 아미노산 등이 타이로신과 결합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죽순을 삶아 물에 잘 헹구거나 메틸셀룰로스를 소량 첨가하면 방지할 수 있다.

삶은 죽순은 가늘게 썰어 죽순밥을 짓거나, 잘게 썰어 달걀에 버무려 끓인 죽순탕으로 끓이면 훌륭한 요리가 된다. 쇠고기 또는 돼지고기를 섞어 양념하여 볶은 죽순채는 영양적 균형이 뛰어난 나물 요리다. 정과는 별미 중의 별미다. 저칼로리 식품인 죽순은 식이섬유소가 풍부하고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비타민 B6가 함유돼 있다. 중풍 예방, 노화 방지 및 비만증이나 고혈압에 좋다고 하니, 제철(4월~6월)에 한국인의 밥상에서 자주 보길 바란다.
박진희 명예기자(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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