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다문화] 연초에서 전자담배까지, 한국 담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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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사진 1. 담배썰기, 김홍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담배썰기, 김홍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025년 3월, 우여곡절 끝에 바둑 영화, '승부'가 개봉된다. '승부'는 사제 관계였던 바둑 기사 조훈현과 이창호를 모티브로, 갈등과 재도전을 그린 울림 있는 영화다. 1990년대 바둑계를 기억하는 중장년층과 바둑 팬들에게 화제가 된 이 영화에는 조훈현 국수(國手)의 대국 습관을 담은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조훈현 9단의 대국 습관 중 하나는 줄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하루에 4~5갑의 담배를 피웠는데, 가늘고 긴 외향의 '장미'만을 고집했다고 한다. 독하면서 오래 피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8-9]사진2. 금연 경고문구( 사진 박진희)
담배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주술 의식에 사용하던 것을 유럽인들이 기호품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세기~16세기 대항해시대에 전 세계로 전파된 담배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전래했다고 한다. 담배라는 명칭도 포르투갈어 'Tobacco'의 일본식 호칭이 변형된 것으로, 처음에는 '담바고'라고 불렀다. 남쪽에서 들어왔다는 의미로 남초(南草)나 남령초(南靈草) 등으로도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연다(煙茶) 또는 연주(煙酒)라 하여 담배와 함께 차나 술로 손님을 대접했다. 당시 담배가 손님 접대의 수단이었으며, 기호식품으로 널리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에는 전국적으로 확산했는데, 담배의 중독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담배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담배 재배 농가도 증가했고, 19세기에는 상품 작물로서 자리 잡아 벼농사를 짓는 것보다 수익성이 10배나 높았다고 한다.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에 그려진 <담배썰기>, <행상>, <벼타작> 등을 비롯해 이득의 <휴식>, 김득신의 <파적도> 등을 통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애연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기에 이르면 잎담배를 장죽이나 곰방대에 넣어 피우던 것이 간소화되고, 개화기를 전후해서는 궐련이 등장한다. 담배는 조선시대부터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니코틴의 존재와 중독성이 알려져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도 있어 종교계와 사회 계몽 단체를 중심으로 금연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기생충에 대한 상비약으로 사용되며 흡연자 비율이 여전히 높았고, 당시 조선총독부는 담배 전매제를 운용하면서 담배 판매를 통한 수입원으로 삼았기에 금연 운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8-9]사진3. 금연버스정류소(사진 박진희)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담배는 '승리'였다. 1945년 8·15 광복을 기념해 만들어진 승리 담배 이후 최초의 봉초 담배인 장수연과 백두산, 무궁화, 백구, 화랑 등이 생산됐다. 1950년대 한국 담배는 국가 전매 체제에서 정부가 담배를 생산·판매했고, 외국 기업이 담배 관련 상표를 다수 등록하기도 했다. 한국 담배의 2세대로 볼 수 있는 이 시기의 대표 담배는 '건설', '풍년초'가 있다. 1960년대 한국은 승강장, 버스 안, 지하철, 영화관 등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는 풍토가 있었다. 전매청에서 생산한 '희망' 외에 설악, 여삼연, 수연, 타이거 등이 발매됐다. 1969년 2월에는 공급 부족 현상까지 초래한 '청자'가 100원에 발매·판매되었다.

1970년대는 '은하수', '연송' 같은 군·수출용부터 '태양', '솔'처럼 관광객을 겨냥한 프리미엄 담배까지 폭넓게 출시되었다. 담배 소매점에서 누구나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던 시기다. 1980년대는 사회 전반적으로 장소에 구애 없이 흡연이 만연했다. 담배 제품 규제와 과세 체계 개선 논의도 활발해졌다. 금연하기 전 조훈현 바둑 기사가 피워 유명해진 '장미'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나온 '88시리즈'를 대표 브랜드로 꼽을 수 있다. 1990년대에는 국내 담배규제 체계의 강화로 이어졌다. 미성년자 보호와 담배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비가격정책으로서, 담배 광고 금지 정책이 시행되기에 이른다. '디스'와 '디스플러스', '엑스포', '하나로' 등이 출시되었다. 야만과 낭만이 공존했던 1990년대가 지나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담배전매권 폐지와 민영화로 시장 구조가 크게 바뀐다. 담뱃값 인상과 함께 직·간접 흡연의 해악도 널리 알려지면서 지자체는 금연구역을 지정하고 위반 시 과태료도 부과하기에 이른다. 2003년 이후 건강상의 유해성 완화와 화재나 화상 등으로부터 안전한 전자담배가 등장했고, 2016년부터는 담뱃갑 포장지에 경고문구 및 경고 그림을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땅에 담배가 들어와 정착한 지 400여 년이다. 오늘날 담배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지만, 한때는 한 가족, 온 마을을 먹여 살리던 효자 작물로, 시름과 피로를 잊게 한 기호식품으로 사랑받았다. 150여 개의 담배 상표에는 애환의 과거사가 오롯이 담겨 있고, 즐겨 피우던 담배 한 개비마다 개개인의 숱한 추억이 공존한다. 그 때문일까? 한국 담배와 동행하는 하루하루는 여전히 흥미롭다.
박진희 명예기자(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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