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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썰기, 김홍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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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연다(煙茶) 또는 연주(煙酒)라 하여 담배와 함께 차나 술로 손님을 대접했다. 당시 담배가 손님 접대의 수단이었으며, 기호식품으로 널리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에는 전국적으로 확산했는데, 담배의 중독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담배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담배 재배 농가도 증가했고, 19세기에는 상품 작물로서 자리 잡아 벼농사를 짓는 것보다 수익성이 10배나 높았다고 한다.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에 그려진 <담배썰기>, <행상>, <벼타작> 등을 비롯해 이득의 <휴식>, 김득신의 <파적도> 등을 통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애연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기에 이르면 잎담배를 장죽이나 곰방대에 넣어 피우던 것이 간소화되고, 개화기를 전후해서는 궐련이 등장한다. 담배는 조선시대부터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니코틴의 존재와 중독성이 알려져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도 있어 종교계와 사회 계몽 단체를 중심으로 금연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기생충에 대한 상비약으로 사용되며 흡연자 비율이 여전히 높았고, 당시 조선총독부는 담배 전매제를 운용하면서 담배 판매를 통한 수입원으로 삼았기에 금연 운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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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은하수', '연송' 같은 군·수출용부터 '태양', '솔'처럼 관광객을 겨냥한 프리미엄 담배까지 폭넓게 출시되었다. 담배 소매점에서 누구나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던 시기다. 1980년대는 사회 전반적으로 장소에 구애 없이 흡연이 만연했다. 담배 제품 규제와 과세 체계 개선 논의도 활발해졌다. 금연하기 전 조훈현 바둑 기사가 피워 유명해진 '장미'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나온 '88시리즈'를 대표 브랜드로 꼽을 수 있다. 1990년대에는 국내 담배규제 체계의 강화로 이어졌다. 미성년자 보호와 담배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비가격정책으로서, 담배 광고 금지 정책이 시행되기에 이른다. '디스'와 '디스플러스', '엑스포', '하나로' 등이 출시되었다. 야만과 낭만이 공존했던 1990년대가 지나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담배전매권 폐지와 민영화로 시장 구조가 크게 바뀐다. 담뱃값 인상과 함께 직·간접 흡연의 해악도 널리 알려지면서 지자체는 금연구역을 지정하고 위반 시 과태료도 부과하기에 이른다. 2003년 이후 건강상의 유해성 완화와 화재나 화상 등으로부터 안전한 전자담배가 등장했고, 2016년부터는 담뱃갑 포장지에 경고문구 및 경고 그림을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땅에 담배가 들어와 정착한 지 400여 년이다. 오늘날 담배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지만, 한때는 한 가족, 온 마을을 먹여 살리던 효자 작물로, 시름과 피로를 잊게 한 기호식품으로 사랑받았다. 150여 개의 담배 상표에는 애환의 과거사가 오롯이 담겨 있고, 즐겨 피우던 담배 한 개비마다 개개인의 숱한 추억이 공존한다. 그 때문일까? 한국 담배와 동행하는 하루하루는 여전히 흥미롭다.
박진희 명예기자(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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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사진 1. 담배썰기, 김홍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https://dawoolimplus.com/mnt/images/file/2026y/02m/15d/2026071501001337400056361.jpg)
![[8-9]사진2. 금연 경고문구( 사진 박진희)](https://dawoolimplus.com/mnt/images/file/2026y/02m/15d/2026071501001337400056362.jpg)
![[8-9]사진3. 금연버스정류소(사진 박진희)](https://dawoolimplus.com/mnt/images/file/2026y/02m/15d/202607150100133740005636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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